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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실미도' 포스터
    영화 '실미도'

     

     

    개봉 : 2003.12.24.

    등급 : 15세 관람가

    장르 : 전쟁, 스릴러, 드라마, 액션

    국가 대한민국

    러닝타임 : 135분

    감독 : 강우석

    출연배우 : 설경구, 안성기, 허준호, 정재영

    동원 관객수 : 1,108만 명

    원작 : 소설

     

     

    영화 <실미도> 한국영화 최초 천만관객 돌파 영화

    영화 '실미도'는 2003년 12월 24일 개봉한 영화로, 백동호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강우석 감독이 제작한 영화입니다.

    대한민국 현대사의 가장 비극적인 사건 중 하나이면서도 역사에서는 지워지고 숨겨진 684부대와 실미도 사건을 재구성한 영화이며, 한국영화 사상 최초로 '천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가 되었습니다. 

    한국 영화에서 '천만 관객 돌파'는 상당히 중요하며 긍정적인 의미를 지닙니다. 이는 한국 국내에서 해당 영화를 1000만 명 이상의 관객이 관람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대중적인 성공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상업적 성공: 천만 관객 돌파는 영화가 상업적으로 매우 성공적이라는 것을 나타냅니다. 많은 관객이 영화를 보고 있다는 것은 해당 작품이 대중과 소비자에게 매력적이라는 것을 시사합니다.

    국제적인 주목: 천만 관객 돌파는 종종 국제적으로도 주목받게 됩니다. 성공적인 한국 영화는 국제 시장에서도 주목받아 수상 경력을 쌓을 수 있습니다.

    영화 산업에 긍정적 영향: 대중들의 관심을 모으고 큰 수입을 올리는 영화는 국내 영화 산업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투자자들이 더 많은 자금을 투자하고, 다양한 작품들이 더욱 생산되는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국민적 자부심과 홍보 효과: 천만 관객 돌파는 국민적 자부심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국내에서 제작된 영화가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는다는 것은 국내 문화와 예술의 수준이 높아지고 있다는 것을 시사하며 국가적인 자부심을 증폭시킬 수 있습니다. 한편, 천만 관객 돌파는 높은 관람률이라는 성취감과 함께, 해당 작품에 대한 기대와 압력을 가중시킬 수 있습니다. 예술적 가치와 상업적 성과 간의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며, 다양한 종류의 영화가 다양한 시각에서 성공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실제 사건과 영화내용의 비교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는 지옥훈련을 받은 31명의 살인병기 '실미도 부대'는 1968년 1월 21일 북한 민족보위성 정찰국 소속의 무장게릴라들이 청와대를 습격하려고 서울의 세검정 고개까지 침투했던 '1.21 사태' 후에 정부에서 '대북 강경 대응 방침'에 따라 대북특수공작을 목적으로 창설되었던 부대입니다.

    계급도 소속도 없는 이들은 오직 주석궁에 침투하여 김일성 목을 따 오는 임무를 맡아  '낙오자는 죽인다, 체포되면 자폭하라'는 구호하에 3년 4개월이라는 긴 기간동안 인간한계에 도전하는 지옥훈련을 받게 됩니다.

    그러는 사이 남북한의 상황이 처음 실미도 부대를 창설할 때와는 전혀 다르게 화해분위기가 조성되기 시작하고 중앙정보부장이 교체되며 급격한 변화를 맞게 됩니다.

    구 시대의 유물이자 유령부대가 된 684부대의 교육대장은 월남에라도 파병을 요청하였지만 비밀유지 명목으로 거절당하게 됩니다.

    실미도 사건은 혹독한 훈련과 열악한 보급, 보수 미지급에 불만을 품은 공작원 24명이 1971년 8월 23일 오전 6시경 기간병 18명을 살해하고 실미도를 탈출하면서 시작됩니다. 이들은 인천 독배부리 해안에 상륙한 뒤에 버스를 탈취해 서울로 향하던 중 육군과 최초의 총격전을 벌이고, 또 두 번째 버스를 탈취해 서울 영등포구의 한 건물 앞에서 이들을 저지하던 군. 경과 마지막 총격전을 벌이다 스스로 수류탄을 터뜨려 부대원 대부분이 사망하게 됩니다.

    생존 공작원 4명은 이후 군법회의에 회부되어 사형이 집행됩니다.

     

    영화 '실미도'와 실제 사건의 내용을 비교해 보겠습니다.

    1. 부대원의 출신

    영화에서는 주로 범죄자나 밑바닥 인생을 주로 포섭한 걸로 나오지만, 이는 극적요소를 위한 영화의 장치일뿐이며, 실제로는 평범한 청년들이었다고 합니다. 공군 모병관이 신체능력이 우수한 자를 물색하여 입대를 유도했다고 합니다. 시골의 순박한 청년들, 운동선수, 서커스단원, 운전기사 등 임기응변을 위해 여러 방면의 이력이 있는 인원을 소집한 것으로 보입니다. 부대원들을 범죄자 출신으로 묘사하였다고 해서 유족들로부터 많은 항의를 받았다고 합니다. 

     

    2. 부대원들의 입대사유

    영화에서는 재소자나 사형수를 사면 목적으로 입대를 유도한 걸로 묘사됐지만, 실제로는 모병관들에게 파격적인 혜택을 제시했다고 합니다. 거액의 봉급을 주고, 장교 후보생에 준하는 대우를 해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임무에 성공하면 성공보수를 지급할 것이며, 원하는 경우 장교로 임관 또는 미군 부대에 취직시켜주겠다고 했다 합니다. 

     

    3. 영화에서 사용했던 장비

    영화에서는 AK-47소총으로 묘사되나 실제로는 M1카빈, M3 기관단총, PPS-43 기관단총등을 사용했으며, 1일 500발의 실탄사격을 하였습니다. 

     

    4. 훈련 중 인원 손실

    영화 : 외줄타기 훈련 중 1명 사망, 1명 부상으로 보직변경하는 걸로 나옵니다.

    실제 : 외줄다리 훈련 중 2명모두 부당, 작업병 등으로 부대에 남았으며, 수영훈련 중 1명이 심장마비로 상한 것이 훈련 중 유일한 사망자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는 후에 국방부 과거사진진상규명위원회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실질적인 가혹행위로 인한 사망이었다고 합니다. 당시 부대원들은 완전군장에 수영훈련을 하고 있었는데, 이중 1명이 너무 힘들어 꺼내달라고 애원했지만 교관이 이를 외면했고 탈진해 익사하고 말았다고 합니다. 

     

    5. 즉결처형자의 숫자

    생존자의 증언으로는 익사1명, 즉결처형 6명으로 알려졌으나, 국방부 공식 문서에는 익사 2명, 도주 중 체포돼 즉결처분 2명, 자살 3명이라고 기록되어 있다고 합니다.

    도주 중 체포된 부대원 2명은, 부대 창설 2개월 뒤에 실미도 옆 무의도로 사역을 나갔다고 복귀하지 않고 민가에 숨어있다 발각되어 끌려왔으며, 명령에 의해 다른 부대원들에게 집단 폭행을 당해 죽고 말았다고 합니다.

     

    6. 작전 취소 이유

    영화에서는 7.4 남북 공동 성명과 중앙정보부장의 교체 등 남북 화해 분위기가 조성되었다는 이유를 언급하지만, 미국의 인가 없는 작전 실행에 대한 염려 때문이라는 음모론도 있다고 합니다.

     

    7. 교육대장의 인성과 사망 경위

    영화 : 교육대장(안성기 분)이 성실하고 임무에 충실한 군인이며, 권총 자살하는 것으로 묘사됩니다.

    실제 : 각종 비리의 악질 군인이었다고 합니다. 부대 운영비가 배정되면 부대원의 월급은 단 3개월만 소액 지급되고 중지했으며, 식사도 형편없었다고 합니다. 이중장부를 만들어 본인이 거액을 착복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앙심을 품은 훈련병 2명이 살해했으나, 작전이 취소되고 부대가 방치될 당시에 훈련병들을 임관시키는 것이 어떻냐고 상부에 건의했다는 증언은 있었다고 합니다.

     

    8. 버스 탈취 후 행적

    영화 : 버스 탈취 후 바리케이드를 세운 진압군과 한차례 교전 후 서울로 향하게 됩니다.

    실제 : 증언에 따르면 버스 탈취 후 석바위에서 버스가 펑크가 났고, 뒤에 오는 다른 버스를 탈취하여 탑승하였으며, 탑승하자마자 진압군이 사격을 가했다고 합니다. 

    영화 : 버스에 타고 있던 민간인들을 내보내고 자폭합니다.

    실제 : 민간인들과 다 같이 자폭합니다.

     

    9. 버스 자폭 후 부대원 근황

    영화 : 언급이 없습니다.

    실제 : 6명이 살아 있었으며, 모두 중상을 입은 상태였는데, 2명은 후송 중 사망하고, 나머지 4명은 군사재판에서 모두 사형을 선고받고 사형이 집행이 되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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